조용히 흘러가는 삶을 사는 조엘에게 거침없이 대하며 그를 흔드는 클레멘타인. 다짜고짜 결혼할 것 같다는 말을 던지며 전화번호를 건네고. 거기에 이상한 끌림을 느낀 조엘은 그날 처음 본 여성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바로 허니문까지 가자고 한다. 그리고 두텁게 얼어있는 찰스강에 둘은 그렇게 나란히 눕게 된다.


“꽝꽝 얼었으니 걱정 마요”
조엘은 그녀의 파란 장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레 손을 잡았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은 얼음판 위를 맴돌았다.
“어째 불안한데..”
“얼른 와요, 어서 오래도”
조엘은 자기도 모르게 클레멘타인의 손을 꽉 쥐었다. 경직된 발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얼음 위로 내디뎠다. 몇 걸음을 빙판 위에 내딛자 얼음 같은 하얀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그는 심호흡을 내쉬며 자기 발을 향해 있던 시선을 들어 찰스강으로 옮겼다.
“눈이 부시네!”
“그렇죠?”
꽁꽁 얼어있는 그를 뒤로하고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빙판 위로 달려갔다.
“멀리 가지 마요.” 그는 우두커니 서서 그녀에게 말했다.
신나서 소리를 지르며 빙판 위를 달리던 그녀는 몇 걸음 못 가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우! 아우!”
“괜찮아요?”
“궁둥이 아파 죽겠네!”
조엘은 동그랗게 된 눈을 하고 조금씩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두세 걸음 정도 가다 여기에 서 있는 자신을 의심하며 멈춰 섰다.
“이만 나가요.” 조엘은 문득 따뜻한 집이 그리웠다. 뒤에 흙색의 잔디와 하얀 눈이 그를 불렀다.
“어서요. 왜요?”
“깨지면 어떡해!”
“지금 그런 생각이 들까? 냉큼 이리 와요”
클레멘타인은 성큼성큼 걸어가 조엘의 손을 잡아끌었다. 혹시나 그녀가 놓치지 않을까, 깨지지는 않을까. 하지만 조엘의 손은 그녀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미끌미끌!”
둘은 스케이트를 타듯이 앞으로 나아갔고, 점점 찰스강은 그들을 한가운데로 초대하였다.
“은근히 재미있네” 조엘은 이제서야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뭐 보여줄게요” 그러더니 그녀는 빙판 위에 자기 집 침대 마냥 드러누워 버렸다.
“뭐하게?”
“누워요”
그는 잘못 들은 척하며 머뭇거렸고, 그녀의 보챔이 이어졌다.
“어서요”
할 수 없이 조엘은 빙판 바닥에 주저앉았다.
“금 갈 텐데” 조엘은 자기 방의 침대가 가장 믿음직스러웠다.
“금 안 가요. 깨지지도 않고” 그녀의 말을 믿고 조엘은 그제야 빙판에 누웠다. 바짝 다가가 그녀가 바라보는 별을 찾고 있었다. 도시는 숨을 죽였고, 숲은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차갑기만 하던 하얀 바닥은 집에 새로 깐 침대보 마냥 새로웠다.

왜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보고 싶어 질까. 나는 그랬다. 파란 머리의 클레멘타인이 눈에 들어왔다. 초반 장면이 지나고 오렌지색의 클레멘타인이 나타난다. 그들이 잃고 싶은 기억처럼 처음의 파란 머리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기억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기억에서 안 좋은 기억만 없앨 수는 없을까? 아니면 이처럼 모두 다 지워야 하는가. 영화에서처럼 지우고 싶은 기억을 지우는 기계가 나중에는 발명되지 않을까 상상을 해본다. 만약 가능하다면 인류의 최대의 발명품이 될지도 모른다. 지우고 난 후 다시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내게는 그때 사랑했던 사람의 기억은 없어도 감정이 남아있을까?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수없이 많은 질문이 내게 쏟아졌다. 그리고 영화를 다시 보았다.